이중섭 오마주 - 솔
* 이중섭 오마주 - 솔, 그리고 <꼬마 친구들에게 띄우는 이중섭의 편지>
내년이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생애와 그림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쓰다 그의 은박지 그림에 흥미가 끌려서
이중섭 오마주 작품을 만들어보았다.
이중섭은 은박지에 그렸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은박지를 구하기도 힘들어서
키친용 호일을 사용했다.
호일이 약해서 다루기가 꽤 까다로웠으나
완성해놓고 나니 그냥 괜찮아 보인다.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꼬마 친구들에게 띄우는 이중섭의 편지>>
- 머리말 -
이중섭은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예요. 그에게 소 그림은 단지 소를 그린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것은 그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며, 자신의 자화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이중섭의 소 그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시대에 어떤 삶의 역경을 겪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이중섭이 태어난 것은 1916년이에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통치하던 암울한 시대였지요. 그는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민족교육의 본산이었던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 공부를 했어요. 유학시절, 그는 한 미술 단체가 주관한 전시회에 여러 차례 출품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 무렵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운명의 여인을 만났어요.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에 빠졌지요. 하지만 당시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 신음하던 때라 일본여자와 사귄다는 것이 그리 떳떳한 일이 아니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은 이중섭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막을 내리는 듯했어요. 그러나 8.15 해방 직전, 마사코가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에 건너와 극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 뒤 이중섭은 마사코의 이름을 ‘이남덕’으로 고쳐 부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요.
하지만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시련이 찾아왔어요. 돈 한 푼없이 남한으로 내려온 이중섭은 한때 제주도에 정착하기도 했지만 부산, 통영, 진주, 서울, 대구 등 이곳 저곳을 떠도는 생활을 해야 했어요. 이중섭의 대표적인 명작들은 이 때부터 죽기 전 마지막 6년 동안 그린 것들이에요.
그는 당시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내와 두 아들을 잠시 일본으로 보냈어요. 하지만 그것이 끝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지요.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그리워하며 그림에 자신의 혼을 쏟아부었어요. 캔버스와 스케치북을 살 돈이 없어 합판이나 담배갑 은박지에도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나중에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영양실조에 걸릴 만큼 궁핍에 시달렸지만 한시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어요. 소 그림을 비롯한 유명한 걸작들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중섭이 남긴 작품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남북 분단, 그리고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중섭이 들려주는 감동어린 얘기에 귀를 기울여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