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그렁댕그렁
소리가 귀로 내려앉아
꽃이 핀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눈이 아닌 귀로
꽃이 피는 걸 본다.
송나라 휘종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亂山藏古寺)’란 제목으로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 정민 <한시미학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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