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이야기

풍경소리

울림J 2014. 9. 19. 11:39

  

  댕그렁댕그렁

  소리가 귀로 내려앉아

  꽃이 핀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눈이 아닌 귀로

  꽃이 피는 걸 본다.

 

 

송나라 휘종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亂山藏古寺)’란 제목으로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 정민 <한시미학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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